CNN이 운영하는 종교 소식 블로그 Belief(CNN Belief Blog)의 댄 길고프(Dan Gilgoff)는 <롬니의 당선 여부와 무관하게 워싱턴 D.C.는 이미 몰몬 텃밭 (With or without Romney, D.C. a surprising Mormon stronghold)>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의 수도에서 이미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몰몬교 신자들을 소개했다.
“미국의 수도는 이미 몰몬교의 텃밭(Mormon stronghold)이 되었다. 후기성도들은 워싱턴 각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내무성 차관보로서 미 내무성 산하 인디언 업무국(U.S. Bureau of Indian Affairs)을 지휘했던 래리 에코호크(Larry Echo Hawk)가 자신의 몰몬교 개종담을 소개한 최근 한 간증회에 참석한 인물들 중에는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 작가 출신 로비스트도 있었고 미 대법원의 전 수석 비서(역자 주: 윌리엄 렌퀴스트(William Rehnquist) 전 연방 대법원장의 비서관을 지낸 마크 캐넌 (Mark W. Cannon)인 것으로 추정)도 있었으며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특별 대사도 있었다.
80년대 초만 해도 워싱턴 지역의 몰몬 교세는 미약한 편이었으나 오늘날에는 25개 이상의 집회소가 있고 워싱턴 15km 반경에 1만 3천여 명의 몰몬교 신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미 국회에는 상원 다수당 대표인 해리 리드(Harry Reid)와 전 상원 법사위원장 오린 해치(Orrin Hatch) 상원의원을 비롯하여 15명의 국회의원들이 포진하고 있고, 이는 몰몬교 신자들이 미국 국민의 약 2%만을 차지함을 감안할 때 다소 높은 수치이다. 콜럼비아 대 교수 리처드 부시먼(Richard Bushman)은 정계에서 커져만 가는 몰몬교 신자들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몰몬 교회 자체는 정치에 관한 한 중립의 입장을 고수한다고 지적한다.
이 밖에도 몰몬들은 미국 정치의 핵심부에 있는 인물들과 다양한 인연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브리검영 대학교 (몰몬 교회 소유의 유타 주 소재 4년제 대학교) 동창회 모임에 초대 손님으로 연설을 한 바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성 장관은 워싱턴의 몰몬 커뮤니티와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다수의 몰몬교 신자들을 보좌관으로 영입한 바 있다.
타 기독교 종파들과 달리 직업 성직자를 고용하지 않는 몰몬 교회는 각 집회소의 감독(bishop, 일반 기독교의 목사에 해당)을 비롯하여 오르간 반주자까지 모두 무보수로 봉사를 하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어려서부터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자주 주어진다. 또한 일반 신자들도 일요일 예배 시간에 청중들 앞에 나가 말씀과 설교를 하므로 누구나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데 능숙한 편이다. 몰몬교 신자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약 2년 간 타지에서 선교사업을 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습득할 기회 뿐 아니라 실패를 맛보는 등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한다. 몰몬교 신자들의 뛰어난 외국어 실력 덕분에 미 국무성에는 수많은 몰몬 신자들이 활약을 하고 있다.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로 출마한 바 있는 존 헌츠먼(Jon Huntsman) 전 주중대사 역시 대만에서 몰몬 교회 선교사로 봉사를 한 덕에 중국어에 능통할 수 있었다.
몰몬 교회 초창기부터 몰몬교 신자들은 애국심이 투철하였고 미 정부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1830년에 몰몬 교회를 창시한 조셉 스미스(Joseph Smith)는 미 연방 정부에 폭도들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는 몰몬 교인들을 보호해 줄 것을 청원한 바 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마틴 반뷰런(Martin Van Buren)과도 수 차례 면담을 하였다. 훗날 스미스 본인이 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으나 투표일이 되기 전에 살해당하였다.
몰몬교인들은 서부로 쫓겨 간 이후에도 주 승격을 위해 끊임없이 연방 정부에 로비를 하였고 당시 연방법에서 불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던 일부다처제를 고수하는 바람에 연방 정부에서 서부로 군대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몰몬들은 결국 일부다처제를 전면 폐기하고 1896년에 유타 주로서 미국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미 정부가 유타 주에서 선출된 국회의원 리드 스무트(Reed Smoot)를 상원에 허용하기까지 4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고 그 동안 스무트 의원은 수차례의 청문회를 통해 몰몬 교회가 더 이상 일부다처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했다. 이러한 고통스런 경험은 오히려 몰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정계에 진출하게끔 하는 촉발제가 되었고 리드 스무트는 훗날 상원 재무위원장의 직에 올라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대표적인 공화당원이 되어 Mr. Republican이란 별명을 얻기에 이른다. 미국인들로부터 수많은 핍박을 받아 온 몰몬들이 오히려 미국의 대표적인 수퍼 애국자(superpatriots) 집단이 된 것이다. 몰몬교인들은 미 헌법이 명시하는 종교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몰몬교의 경전은 미국의 헌법이 하늘의 영감을 받아 작성된 문서라고 말하고 있다.
유타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던 몰몬교인들이 본격적으로 워싱턴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애국심이 충만한 몰몬교의 젊은이들은 세계 대전에 참전하며 동시에 수많은 정부 부처의 요직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 무리 중에는 작은 햄버거 가게로 시작하여 훗날 세계적인 호텔 체인을 일구어낸 윌러드 메리어트(J. Willard Marriott)도 끼어 있었고 이 세대들이 엮어 놓은 거미줄 같은 휴먼 네트워크를 통하여 훗날 미트 롬니 (Willard Mitt Romney) 역시 정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미트 롬니의 본명 Willard는 미트 롬니의 아버지 조지 롬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윌러드 메리어트에서 딴 것이었다.)
1950년대 아이젠하워 정권 하에서 몰몬들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몰몬 교회의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에즈라 태프트 벤슨이 농림성 장관에 임명된 것이다. 이 사건은 몰몬교인들이 미국의 주류 사회에 입성하는 데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하였으며 몰몬들은 곧 경제계, 학계, 정부 등에 두루 발을 내딛었다.
1974년에 미국 동부 지역에 최초의 몰몬교 성전(temple)이 건립되었으며 이는 몰몬 교회가 동부로 다시 돌아왔음을 상징하는 매우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외곽 순환 고속도로인 벨트웨이(I-495 “Beltway”)를 끼고 우거진 수풀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워싱턴 성전은 워싱턴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몰몬교 신자들은 매우 조직적이고 애국적이며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다. 주로 보수적 성향을 띠는 몰몬 교인들은 수많은 보수 정치 집단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레이건 정부가 전략적으로 백악관에 몰몬들을 대거 영입한 것도 몰몬교인들의 (특히 공화당으로의) 정계 진출을 부채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몰몬교의 공식 명칭)는 여전히 정치적 중립을 고집하며 교인들이 교회의 아젠다를 정치판에 끌어다 놓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나 몰몬 교회는 캘리포니아 주의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법안인 프로포지션 8의 통과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바 있고 (정치적 이슈가 아닌 도덕적 이슈라고 해명하였다) 상당수의 비판론자들은 몰몬 교회가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몰몬 교회의 감독(bishop)들은 가톨릭 교회나 성공회 주교(bishop)들과는 달리 교회를 통하여 입법 로비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는 종교적 이슈를 정면에 부각시키곤 하는 타 종교 출신 정치인들과 대조적으로 정치와 종교를 철저히 떼어 놓으려고 노력하는 미트 롬니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상당 부분의 미국 사회가 여전히 몰몬 교회를 이단(cult)으로 치부하는 데에 대한 자기방어적 반응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일부 보수 몰몬교인들은 낙태 문제나 동성 결혼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다소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롬니의 태도를 못마땅해 하는 경향도 있다.